클벅 아나토미

3x25 리뷰 by 42

젠젠젠 2009. 7. 10. 22:58
난 이번 에피가 미칠 듯이 좋고 집중력 만빵이었는데
첫번째로는 역시 들화의 연기가 후덜덜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언젠가 일어날 줄 알았던 일이 마침내 '잘' 일어났기 때문이야.

여기서의 '잘'은 그동안 작가들이 3시즌에서 한 개뻘짓 둘에 비하면
(앨리스-수잔-태쳐의 멜의 부모 관련 전개, 이지-조지의 막장 전개)
그나마 주요 캐릭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게 그려졌다는 거야.

우리는 전지적 시점에서 드라마를 보지만 드라마 속 캐릭들은 그렇지 않아.
또 작가의 '이건 이거야'보다는 시청자의 '이건 그거던데?'가 중요하고.
작가는 자기가 생각을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설득시킬려면 무던히 노력해야해.
그레이 작가진은 이러한 작가로서의 기본 의무에 소흘했었지. 욕먹어 마땅해.

3시즌 후반 들어 멜데 스토리와 들복 스토리가 묘하게 중첩되고 있어.
두 남자는 자기 여자의 진심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를 다잡다가도 결국 지쳐.
물론 맥배추의 고민보다는 복호의 고민이 한 단계 높은 스테이지에 있지만.

버크는 클스와의 관계에 주도권을 쥐고 있었어.
클스는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결국은 버크를 따랐어.
버크는 클스가 자신을 사랑해서 마지막에는 굽힌다는 걸 잘 알고있어.
3시즌에서는 이 여자가 과연 나를 사랑하나의 레벨도 뛰어넘었어.
사실 클스의 성격상 그렇게 밀어부치지 않으면 지금에 이르지도 못했고.

버크가 세이엉클에서 이기고 처음 내뱉은 말이 '결혼해줘'였지.
나에게는 그 청혼이 남편을 잡으려고 아기를 갖자는 캘리의 말과 똑같이 들렸어.
지금 눈 앞의 사람을 어떻게든 놓치고 싶지 않아서 깊은 고민없이 내뱉은 거지.
그리고 클스 역시 똑같은 이유로 거기에 답했어. 둘은 서로를 너무 사랑하니까.

버크는 클스와의 관계가 처음부터 불안했어.
자기가 좀 더 강하게 나가지 않으면 이 쿨한 여자가 휙 사라질 것 같았거든.
맥배추는 버크에게 계속 넌 행운아라 하지만 버크는 그렇게 생각 안했을 꺼야.
클스가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알고 있기에 자책감과 불안이 더 심했을 테지.
여기까지는 밀어붙여도 되지만 다음은? 과연 이게 어디까지 가능할까싶어서.
치프도 말했듯이 이 남자가 좀 많이 똑똑하잖아.


파이널 에피에서 치프는 네 어텐딩에게 한 마디씩 하지.
그건 결국 치프의 말이 아니라 숀다의 말이었고 각자의 내면의 목소리였지.

"자기 능력 밖 일을 인정해야 해. 넌 그러지 않고 그녀를 밀어붙였어.
넌 아는 건 많지만 결코 완벽하지 않아. 네가 정말로 그녀를 다 알긴 알아?
난 정말 네게 클스를 주고 싶었어. 그렇지만 그럴 수는 없어"


버크가 과장이 되지 못해 클스를 떠났다고? 절대 그렇지 않아.
버크는 계속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었어. 클스만 결혼을 두려워 한 게 아냐.
임산부 수술 중 버크는 자신의 결혼서약서를 읊지만 그건 지독한 역설이야.

그는 확신하지 못해. 그는 steady하지 못해. (1:1로 대응하는 한국말이 생각 안나)
그는 그들의 관계에서 애써 낙천적이었고 애써 희망에 가득 차 일을 진행했어.
물론 그는 클스를 자신의 사랑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고 파트너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내민 심장을 클스가 받아줄지, 받는다해도 그 것이 과연 진심인지 불안해.
그리고 자신의 이런 모든 행위가 과연 '올바른 사랑'인지 '집착'인지 두려워.

임산부 수술이 대충 마무리되자 맥배추는 버크에게 얼른 나가라고 해.
그렇지만 버크는 '난 아직...'하며 말 끝을 흐려. "난 아직 확신할 수 없어"
바로 그 때 클스는 메스를 들고 '내가 아닌 것 같은 나'와 싸우고 있었지.

결혼식 단상 위에서 클스를 기다리며 버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패닉이 벌어진 저 문 너머의 상황이 눈에 훤했을까? 알면서도 애써 눈을 돌렸을까?
aisle(역시나 뭔가 정확한 용어가...)을 걸어 내려가는 버크의 표정을 봐.
한 걸음 내딜 때 마다 고민과 자괴감이 점점 짙어지고 있어.
그리고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뜬 그 순간, 감정이 넘쳐버렸어.

콜린이 등장한 이후로 워싱턴의 표정 연기를 잘 지켜봐 봐.
불안이, 혼란이, 그리고 그걸 무시하고서라도 클스를 잡고 싶은 사랑이 뒤섞여있어.
난 25에피 내내 버크를 보면서 슬펐어. 그 힘들어함이 눈 앞에 빤히 잡혀서.
정말 식장에서 이럴 줄은 몰랐지만 최소한 해피해피 러브러브하지는 못할 것 같았어.

그리고 그는 결국 그렇게 떠나지. 클스의 마음도 모르고.
사람 속은 말로 하지 않으면 알 수 없어. 우리 시청자는 알지만 벅은 몰라.
그럼 왜 벅이 지금껏 클스의 생각을 묻지 않았냐고? 왜 혼자 앞서갔냐고?
두 사람 모두 불안했거든. 두 사람은 모두 서로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또 사랑해서
잠시의 감정적 불편함보다는 상대를 영원히 잃는 것이 더 두려웠거든.

결국 이번 일은 지금까지의 벅클 관계가 뿌리부터 뒤흔들린 사건이었어.
두 사람은 애써 마주하지 않았던 진실을 가장 최악의 형태로 바라보게 되었지.
난 이대로 두 사람의 관계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4시즌에서는 클스의 다가감으로 이 관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봐.


사람이 사람을 사귄다는 건 결국 그 사람과 함께 하며 조금씩 변해가는 거겠지.
사랑도, 우정도, 모두 마찬가지야. 여우의 말처럼 길들여지는 거야.
육체적으로 생식 능력이 생기고 법적으로 성인이 되었다고 성장이 끝난 게 아니야.
사람은 하루하루 조금씩 성장하고 있고 이는 죽을 때까지 계속될 꺼야.

벅과 클스는 알게모르게 서로를 통해 많이 변했고 많이 길들여졌어.
'나다운 나, 너다운 너'가 도대체 뭔대? 그런 게 존재하기나 해?
숀다는 두 사람이 심장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 슬프다고 했지.
그런데 다르면 안되는 거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으론 충분하지 않아?
이들은 서로가 달라서 깨진 게 아니야. 다름을 애써 눈감아와서 부서진거지.
똑같은 것을 바라봐야할 필요도, 상대에 물들여져가는 자신을 두려워할 것도 없어.

클스는 버크가 떠난 집에서 쵸커와 드레스를 벗어던지며
일말의 안도감을 느끼지만 곧 공허감과 슬픔에 몸을 떨어.
그녀는 이미 혼자 잠을 잘 수 없어. 버크에게 흠뻑 물들여져 있으니까.
버크라고 클스에게 물들여지지 않았을까? 아니야. 그도 그녀없이 잠들지 못할 거야.

배우의 계약이 정말로 성사가 안되어서 버크가 없어져야만 하는 거였다면
이런 식의 전개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꺼라고 확신해.
그랬다면 클스의 얼굴에 안도감이 더 컸었겠고, 버크의 얼굴엔 분노가 짙었겠지.

그래서 난 3시즌의 이 결말이 극복 가능한 최종 난관으로 보여.
어떤 오랜 시간과 과정이 걸리더라도 두 사람을 이를 이겨낼꺼야.
오랜만에 작가들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되살아나기도 했으니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4시즌을 기다려볼까 해.

지금의 엇갈림과 아픔이 언젠가 더 큰 보답으로 돌아올꺼야.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근거 있는 자신감이야.
조금 더 나의 버크와, 나의 클스를 믿어볼려고.

그리고 그들에 지지 않게 내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겠지.
갑자기 왠 교훈조냐 그럴지 몰라도 정말 그렇게 느꼈다니까.
바로 이게 내가 사랑했던, 그리고 사랑하고 있는 드라마의 매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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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0  레드 벨벳에 42횽이 올린 감상문
이렇게나 멋지게 분석을 해놓았는데, abc는 그따위로 해고하고
숀다뇬은 이런식으로 결론지어놓곤,, 4시즌 클스 캐릭터 병신만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