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라 오, 개념 인터뷰
<사이드웨이스> <버터 냄새> 배우 산드라 오
2004.12.24 / 한선희 기자
실제의 산드라 오는 영화 속 인물보다 훨씬 진지하고 신중한 모습이다. 무척 아름다운 저음으로 또박또박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다문화 사회에서 살아온 아시아계 배우로서 오랜 경험과 고민의 흔적이 묻어 있다.
할리우드의 수많은 영화인들이 거쳐간 유서 깊은 태프트 빌딩. 이곳 7층에 위치한 그레이스 리 감독의 사무실에서 산드라 오를 만났다. 내년에 방영될 TV 시리즈 <Grey>를 촬영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는 산드라 오는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나타났다. 지금 산드라 오는 올해 가장 뛰어난 미국영화에 출연한 유명 인사가 되어 있다. 그의 남편이기도 한 알렉산더 페인이 <어바웃 슈미트> 이후 오랜만에 내놓은 <사이드웨이스>가 미 전역에서 절찬리에 상영 중이다. <사이드웨이스>는 중년의 두 남자가 총각 파티를 위해 포도밭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여기서 산드라 오는 와인 양조장에서 시음을 돕는 웨이트리스 스테파니를 연기한다. 와인의 관능성을 그대로 상징하는 인물인 스테파니는 극중 사랑의 열병에 시달리며 울고 웃는다. 산드라 오는 농익은 와인처럼 달콤하면서도 섹시한 스테파니를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그러나 실제의 산드라 오는 영화 속 인물보다 훨씬 진지하고 신중한 모습이다. 무척 아름다운 저음으로 또박또박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다문화 사회에서 살아온 아시아계 배우로서 오랜 경험과 고민의 흔적이 묻어 있다.
산드라 오는 캐나다 출신이다. 헬렌 리의 단편 <먹이>의 주인공으로 처음 우리에게 얼굴을 알린 그는 캐나다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여배우였다. 1993년 TV 영화 <에블린 로의 일기>에서는 약물 중독자이자 창녀를, 이듬해 <이중 행복>에서는 중국계 캐나다 여성의 성장기를 그려 각종 연기상을 휩쓸었다. 그러나 산드라 오는 1995년 LA로 건너와 할리우드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수많은 단역을 거쳐간 그는 TV 시리즈 <Arli>에서 독립적인 아시아계 사무직 여성으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그리고 <댄싱 이구아나>와 <투스카니의 태양>에서 비교적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해 호평받았다.
이제 데뷔한 지 10년을 훌쩍 넘겼지만, 산드라 오는 주류 영화계와 독립영화를 가리지 않는다. TV와 영화와 연극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다방면에서 활약한다. 그가 배역을 선택하는 기준은 한 가지. 영화의 이야기에서 얼마나 필수적인 역할인가를 늘 염두에 둔다. 그러니까 출연 비중이 작더라도 드라마에서 핵심적인 인물이라면 얼마든지 수락한다는 것이다. 그레이스 리 감독의 UCLA 졸업작품 <Barrier>(2002)는 산드라 오가 가장 아끼는 출연작이다. 산드라 오는 “이 영화는 그해 내가 읽은 시나리오 중 최고였으며, 그해 나 자신의 최고작”이라고 치켜세웠다. “여성을 영웅으로 만드는 영화는 거의 드물기 때문에, 이런 영화를 한다는 게 기뻤다”는 것이다. 산드라 오는 미국영화에서 아시아 여성이 주로 순종적인 역할을 맡는 것을 경계했다. “아시아 아메리칸 여성들은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약하지 않다. 일본과 중국, 한국의 여성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 없지 않나. 영화 속에서 아시아 여성의 그런 모습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진리가 아니라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투영할 뿐이다.”
산드라 오는 할리우드의 아시아 여배우로 가장 성공한 루시 루가 미녀 액션 스타로 전형화되는 것에 대해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루시 루는 이곳에서 그만한 위치에 오른 유일한 배우다. 그렇기 때문에 무얼 하든 비판을 받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배우로서 어떤 경험을 해왔는지를 모르지 않나. 그 자리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스스로 일 중독자라고 고백하는 산드라 오는 이제 그레이스 리의 장편 데뷔작 <버터 냄새>의 여주인공을 맡는다. 그는 “한국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사실이 두렵지만 흥분된다”고 말한다. 또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생긴 도시에 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라며 궁금해 한다. 그는 배우로서 더욱 강렬한 자기 정체성을 느끼면서 한국으로 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버터 냄새>를 제외하고 지금 산드라 오가 촬영 중인 영화는 모두 4편. 산드라 오는 할리우드에서 완연히 자기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인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아시아 여성 영웅을 연기하기를 원하는 산드라 오는 이제 막 힘차게 이륙했다.
“전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연기를 합니다. 사람들은 제가 극중 어떤 역할을 맡고 있든 한국계 여자를 먼저 보게 되죠. 그건 축복이자, 도전이기도 합니다.”
전 남편 알렉산더 페인이 연출하고 그가 출연한 2004년 영화 ‘사이드웨이’ 에서 산드라 오(오미주·36)는 썩 괜찮은 연기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한국계인 그녀가 ‘대중 스타’가 될 것이라 예상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그레이 아나토미(Grey’s Anatomy)’ 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미국에서 전국 시청률 1위를 다투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ABC TV 드라마에서 그녀는 아이를 유산하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사 크리스티나 역을 맡아 빼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2005년 골든글로브 여우 조연상, 2006년 에미상 최우수 배역상, 2006년 미국배우조합(SAG) 우수연기상 등을 차례로 수상하며 전성기를 열어나가고 있다. 할리우드의 철저한 비주류인 동양계 한국인으로서 이처럼 성공을 일궈낸 사례는 처음이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그를 이메일로 단독 인터뷰했다. 지적인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대답들이 돌아왔다.
―당신은 할리우드에서 스타덤에 오른 몇 안 되는 아시아인 중 한 명이다.
“우리 같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현재 내 위치가 의미있을 것이다.”
―‘그레이 아나토미’로 많은 상을 타면서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난 내 역할이 주목 받기를 바랐고 정말 열심히 했다. 동료들과 업계가 알아줬으니 더 없이 멋진 일이다. 골든글로브 상 수상은 내 생애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
―할리우드에서 한국계 배우로서 겪는 어려움은 없나?
“아시아계, 또 한국계로서 이 업계에서 일을 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답하기에는 좀 방대한 문제인 것 같다. 어쨌든 나한테는 ‘한국계 여자’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닌다. 그건 바로 내 얼굴이다.”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항상 옳다고 믿는 인물이다. 당신의 성격과 통하는 부분이 있나?
“대체로 비슷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일에 가치를 부여하고 헌신한다는 점에서는 통한다. 크리스티나는 감정적으로 발육이 덜 되어 극심한 의사소통의 부재를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로 살아가는 걸 좋아한다.”
산드라 오의 부모는 1960년대 초 서울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다. 아버지 오준수씨와 어머니 오영남씨는 각기 다른 대학에서 경제학과 생화학을 공부했으며 이어 캐나다 토론토 대학으로 함께 옮겨와 학업을 이어갔다. 70년대에 오타와로 이주. 그는 “여러 면에서 전형적인 이민가정에서 자랐다”며 “부모님께서는 엄격하셨고 나는 교회에 가고 학교도 잘 다녔다”고 했다. 그의 언니 그레이스(순주)는 변호사이며 남동생 레이먼드(산인)는 의학유전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부모님도 배우 되는 걸 좋아하셨나?
“그렇지 않다. 난 4살 때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했고 부모님 마음도 그 쪽에 있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춤을 좋아하면서도 내 재능이 전문 댄서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연기를 선택했다. 무대 위에서는 전혀 떨리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과 충돌은 없었나?
“대학에 가지 않고 연극학교에 가겠다고 고집 부렸을 때, 부모님은 그간 겪었던 고난을 말하시며 나를 막았다. 결국은 나의 결정을 존중하셨지만.”
―캐나다와 미국 할리우드에서의 연기 생활은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캐나다에서는 나 같은 사람이 주연도 하고, 스타가 될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정말 어렵다. 나에게 항상 조연만을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나다는 아직도 미국 영화산업에 꼼짝 못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배우로 살기는 어렵다. 미국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성공을 향해 달려가며 스트레스도, 희생도 많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성공했더라도 매우 평범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당신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인가?
“미스터리다. 내가 속한다고 들었고, 유전학적으로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라고 알고 있지만 막연하게 신비한 느낌이다. 부모님은 한국인이면서도 캐나다인이고 대부분의 삶을 북미에서 보냈기 때문에 부모님이 생각하고 기억하는 한국은 오래 전 모습이다. 나는 그런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랐다. 그러니까 지금의 한국 분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내 머릿속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그 차이는 때로 괴로운 추억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한국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을 방문, 내 일부를 발견해 보고 싶다.”
―당신 연기의 철학은 무엇인가?
“연기는 내 인생이다. 나를 표현하고 나를 배우고 또 다른 이들과 연결되는 방법이다.”
―당신의 연기인생 중 가장 의미있는 순간은?
“CBS의 TV 영화 ‘에블린 로우의 일기’에 출연했을 때다. 연극학교를 졸업하고 맡았던 첫 작품이다. 그때 난 젊었고 더 나은 것을 몰랐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수십 차례 잘못을 거듭했다. 하지만 바로 거기서 용기도 얻었고 나만의 창의력도 발휘하게 됐다.”
그녀는 인생이란 걸 이렇게 정의하며 인터뷰를 끝냈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고 쉽지도 않지만 멋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죠.”
사진 제공 | BWR Public Relations